기대의 양면
Posted 2007/10/02 00:36가끔은 칭찬이 겸연쩍을 때도 있고, 질타에 무감할 때도 있는 법.
뜬금없지만 슬픔과 기쁨은, 가끔 어이없을만큼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파란 하늘을 봐도 - 물론, 질이 나쁜 표현이지만 - 컷터로 손목을 끊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플 때가 있는가 하면, 눈물이 날만큼 기쁠 때도 있다. 그렇게 느끼는 자신은 확실히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그만큼 같은 일이라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거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그런 것은 있겠지.
누군가의 기대 역시, 때론 그 무게가 상상을 초월할만큼 무거울 수도 있고, 때론 귓등으로 흘려 들을 수 있을만큼 가벼울 수도 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따라, 또 받아들이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또는 그 사안이 어떤 종류의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론 이런 것 역시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어도, 당시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다. 그 기대로 인해 내가 압박을 느끼고 그만둬버리고 싶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고, 그 기대를 받아들여 열심히 할 수도 있는 문제. 이런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이른바「사회화가 잘 되어 있는 인간」이라면 그 정도를 잘 조정해서 설령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해도 어른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내겠다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일단 받아들이는 그 당시의 솔직한 마음은 당장 그 말을 들었을 때마다 다르겠지. 물론 사람마다도 다를 것이고. 사고하는 동물인 인간으로서 내가 한껏 머리를 굴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위와 같은 일은, 조금만 사려깊은 '척'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들. 이렇게 알고는 있어도, 당장 나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면 조금은 화나고 조금은 서운한, 묘한 기분이 든다. 뭐랄까, 이건 표현의 문제인데, 내 말이 부담된다고 했더라면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을, 하필이면 '싫어.' 와 '귀찮아.' 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표현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다. 물론, 저 말들은 그녀의 입버릇이지만 그런 입버릇까지 고려해줄만큼 사려깊지 못한 것은 분명 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속이 상해서 견딜 수 없어진다. 이럴 땐 정말 쓸데없이 예민하고 피곤한 인간이다, 나.
시험을 앞두면 초조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당연한 기분에, 자신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 단지 실행하기 싫을뿐인 - 일을 강요받으면 싫겠지. 그렇지만 부딪혀보지도 않고 도망갈 길부터 찾고 있는 것은 어쩐지 꼴사납지 않은가. 이것 역시, 단순히 나의 관점일 뿐이라서 결국은 서로 타인이니까 사람마다 다른 방법이 있다고는 나 역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정도 선에서 넘겨주면 나도 납득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선에서 너무 감정적으로 울컥한 것이 오늘의 패인. 어차피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을거다. 단지, 「성가신 상황」이 싫었을 뿐.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충고라는 옷을 입은 제멋대로의 발언」을 이해받기 원한 것이 아니라 이왕 스스로 택한거라면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을 뿐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노력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시도가 실패했을 때 낙담하거나 좌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순되게도 지독히도 미지근한 인간이면서, 미지근한 상황을 즐길줄 모르는 까닭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일이면 이런 화제는 어딘가로 쏙 들어가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 확실히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인 일이 아닌가. 이 정도의 일이라면 언제, 어디에나 차고 넘치는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속이 상해서 어쩔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서 꽁하니 벽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목적도 없이 빙빙도는 사고를 억지로 멈추고 잠들어버리는 것이 고작이다. 결론을 내려고 작정해봐야 결론은 나지 않는다. 서글프게도 그렇다. 예전에는 결론을 내려 끝없이 서로 할퀴고 생채기를 냈지만, 더 이상은 그러지 않는다. 그래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버렸다.
나의 「기대」가 상대에게 짐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비참하다. 그러나 그 「기대」에 내 욕심은 없었던 걸까, 그 기대를 빌미로 나의 추한 모습을 애써 부정하고 있지는 않았던 걸까. 과거에 내가 그런 「기대」에 진저리를 쳤던 모습이 지금의 상황에 겹쳐지며 굉장히 우울해진다.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말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자신을 향한 말이 되어버렸다. 이게 제일 슬프다. 왜 나는 내가 듣기 싫은 말을 상대에게 아무 생각없이 해버렸던 걸까?
지리멸렬한 이 글은 결국 어떤 결론을 내기 위한 글인데, 몇 번이나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 때, 내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던 것 같다. "이거라도 해." 와 같은 강한 향신료가 가미된 말이 아니라 좀 더 먹기 쉬운, 부드러운 말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식으로 자책하는 결론이 나온 것은 몹시 유감이지만, 타인을 책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책하는 것이 낫다. 확실히 타인을 고치기보단 자신을 고치는 것이 쉬우니까.
그러니까 내일 분위기를 봐서 좀 더 부드러운 말을 해주자. 옆에 수북히 돋아난 생각의 곁가지를 쳐내고, 비록 그녀가 눈에 띄게 표현하지는 않아도 내심 분명히 좌절할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마음 속에는 그 기분만 남겨두자. 내가 그 때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고 그 말을 해주자. 서로 상처입히고 싶어서 이렇게 오래 사귀고 있을 까닭은 없으니까. 오늘은 지극히 표현에 서툰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했으니까, 내일은 내가 그 말을 해줘야지. 한 살을 더 먹은 나니까, 그 나이값 정도는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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